전세 계약갱신청구권 계약서 다시 써봤더니 보인 것들

경매 물건을 보러 갔다가 임차인에게 계약서 두 장을 보여 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 쓴 전세계약서와 갱신할 때 다시 쓴 계약서였죠. 두 번째 계약서에는 새 보증금과 기간만 적혀 있었습니다. 갱신청구권을 쓴 건지, 집주인과 그냥 재계약한 건지는 어디에도 없더군요. 임차인은 분명히 행사했다고 기억했고, 집주인은 서로 합의해 새로 계약했다고 말했습니다. 서류 한 줄의 빈자리가 나중에는 꽤 큰 다툼이 됩니다.
새 계약서를 쓰기 전에 갱신 요구부터 남겼다
전세 계약갱신청구권 계약서를 찾는 분들이 먼저 알아둘 점이 있습니다. 갱신청구권을 행사하는 데 새 계약서가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닙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임차인이 정해진 기간에 갱신을 요구하고 집주인에게 그 의사가 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법원도 갱신 요구가 임대인에게 도달한 때 갱신의 효력이 생긴다고 봤습니다. 계약서는 그 뒤에 기간과 보증금, 행사 사실을 분명히 남기는 문서에 가깝습니다.
요구할 수 있는 기간은 기존 계약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입니다. 만료일이 12월 31일이라면 마지막 날에 급히 문자 한 통 보내고 안심할 일이 아닙니다. 상대방에게 도달했는지까지 확인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문자나 메신저로 보낼 때도 주소와 기존 계약 만료일을 적고,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해 2년 갱신을 요구합니다”처럼 뜻을 분명히 쓰는 편입니다. 답장과 발송 기록도 함께 보관합니다. 말로만 주고받았다면 나중에 누가 언제 무엇을 요구했는지 입증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이 권리는 원칙적으로 한 번 행사할 수 있고, 행사에 따라 갱신된 기간은 2년으로 봅니다. 반면 서로 별말 없이 넘어가는 묵시적 갱신이나 합의에 의한 재계약은 곧바로 갱신청구권을 쓴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같은 ‘2년 연장’이라도 어떤 방식으로 이어졌는지가 중요합니다.
계약서에는 행사 사실과 돈의 흐름을 적었다
제가 임차인 입장에서 계약서를 다시 쓴다면, 먼저 기존 계약을 특정합니다. 집 주소와 호수, 처음 계약한 날짜, 기존 만료일을 적습니다. 그다음 새 기간과 보증금, 임대인과 임차인 이름을 확인합니다. 특약에는 “임차인이 ○년 ○월 ○일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했고, 이 계약은 그에 따른 갱신계약이다”라는 취지를 남깁니다. 실제 행사 사실과 날짜가 맞아야 합니다. 나중에 권리를 아껴두려고 행사했는데도 ‘합의 재계약’이라고 적거나, 행사하지 않았는데 ‘행사 완료’라고 적는 건 위험합니다.
가령 기존 보증금이 3억 원이고 갱신하면서 1천만 원을 올리기로 했다면, 새 보증금 3억 1천만 원만 쓰지 말고 증액분 1천만 원과 지급일도 따로 적는 게 좋습니다. 기존에 건넨 3억 원은 그대로 유지되고 추가로 얼마를 언제 지급하는지 서로 같은 숫자를 보고 서명해야 합니다. 갱신청구권 행사에 따른 증액은 기존 보증금의 5%를 넘길 수 없다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집주인이 언제나 5%를 당연히 올릴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실제 증액 여부와 금액은 법의 요건과 당사자 사이의 협의를 따져야 합니다.
새 종이를 썼다는 이유로 원래 계약서를 버리는 분도 있습니다. 그건 말리고 싶습니다. 처음 계약서와 확정일자, 갱신계약서, 갱신 요구를 주고받은 기록을 한 묶음으로 보관해야 권리의 시작과 변경 과정을 설명하기 쉽습니다. 서명 직전에는 임대인이 현재 소유자인지도 등기사항증명서로 다시 확인합니다. 계약 기간 중 소유자가 바뀐 집이라면 서명하는 사람의 지위를 대충 넘겨서는 안 됩니다.
보증금이 올랐다면 확정일자를 다시 챙겼다
경매 현장에서 임차인의 보증금을 볼 때 저는 전입일, 점유, 확정일자와 보증금 증액 시점을 따로 봅니다. 원래 보증금에 확정일자가 있었다고 해서 나중에 올린 금액까지 무조건 같은 순위로 보호된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법무부의 주택임대차 안내도 증액된 보증금의 우선변제권을 확보하려면 갱신계약서에 다시 확정일자를 받으라고 설명합니다. 실제 배당에서는 중간에 설정된 근저당권 같은 선순위 권리가 문제 될 수 있습니다.
숫자로 보면 더 실감 납니다. 기존 보증금 3억 원을 3억 1천만 원으로 올렸는데, 그 사이 집에 근저당권이 잡혔다고 가정해 보죠. 임차인이 계속 살고 전입신고를 유지하며 원래 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받았더라도, 추가한 1천만 원은 그 지급 시점과 새 확정일자, 중간 권리의 순서를 따져야 합니다. 갱신계약서에 도장만 찍고 등기부를 다시 보지 않는 습관이 위험한 이유입니다. 보증금이 그대로라면 새 확정일자가 꼭 필요한 상황과는 구별해서 보면 됩니다.
보증금이 바뀌는 갱신계약은 주택 임대차 신고 대상인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대상 지역과 금액 기준에 해당하면 계약 체결일부터 30일 안에 신고해야 하고, 계약서를 제출해 신고 접수가 완료되면 확정일자가 부여된 것으로 봅니다. 신고 여부나 처리 상태를 막연히 짐작하지 말고 접수 결과를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2년을 적었다고 무조건 2년을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계약서에 새 기간을 2년으로 적으면 임차인이 중간에 절대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갱신청구권을 행사해 갱신된 계약에서는 임차인이 언제든 해지를 통지할 수 있고, 임대인이 통지를 받은 날부터 3개월이 지나면 효력이 생깁니다. 대법원은 새 계약 기간이 시작되기 전에 해지 통지가 도달한 경우에도 이 법리가 적용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이사 날짜와 보증금 반환 날짜가 저절로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니, 통지한 날짜와 상대방이 받은 기록을 남겨두는 게 좋습니다.
집주인이 거절할 수 있는 사유도 법에 정해져 있습니다. 집주인이나 법에서 정한 가족의 실제 거주 같은 사유가 대표적이지만, “내 집이니 갱신은 안 된다”는 말만으로 끝나는 문제는 아닙니다. 반대로 임차인도 연체나 무단 전대처럼 법에서 정한 거절 사유가 있는지 봐야 합니다. 이런 다툼이 생기면 서둘러 새 계약서부터 쓰기보다 통지 내용과 시기, 현재 등기 상태를 먼저 맞춰 보는 게 낫습니다.
입찰장에서 임차인의 서류를 들여다볼 때마다 느낍니다. 전세계약서 한 장은 사는 동안엔 평범한 종이지만, 집주인이 바뀌거나 경매가 시작되면 날짜와 숫자 하나가 보증금의 행방을 가릅니다. 갱신할 때의 작은 수고가 그때는 꽤 큰 차이를 만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