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권리금 계산하다가 가격표를 다시 봤다

상가를 보러 갔다가 권리금 8천만 원이라는 말을 들으면 저는 먼저 매출 장부를 찾습니다. 장사가 잘된다는 설명은 그럴듯해도, 월세와 인건비를 빼고 얼마가 남는지는 다른 이야기거든요. 경매 물건을 볼 때도 비슷합니다. 현장 분위기에 마음이 움직일수록 숫자를 다시 써봐야 합니다.
8천만 원이라는 가격은 어떻게 나왔을까
권리금은 보증금이나 월세와 별개입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시설·비품뿐 아니라 거래처, 신용, 영업 노하우, 입지에서 생기는 이점도 권리금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이전 임차인이 쓴 인테리어 비용을 새 임차인이 그대로 갚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현장에서 듣는 권리금에는 대개 세 가지가 섞여 있습니다. 지금도 쓸 수 있는 시설의 가치, 기존 손님과 매출이 이어질 가능성,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장사할 수 있다는 기대입니다. 문제는 마지막 두 가지가 계약서에 적힌 금액만큼 따라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사장이 바뀌면 단골도 떠날 수 있고, 월세가 오르면 같은 매출을 올려도 남는 돈은 줄어듭니다.
그래서 저는 매도인이 요구하는 금액을 출발점으로 두되, 시설과 영업수익을 따로 계산합니다. 법으로 정해진 권리금 계산 공식이 있어서 답을 찍어주는 방식은 아닙니다. 서로 다른 근거를 한 금액에 뭉쳐 놓으면 비싼 이유도, 깎아야 할 이유도 흐려집니다.
매출 2천8백만 원 가게를 숫자로 풀어보면
가상의 1층 음식점을 놓고 계산해보죠. 사장이 권리금 8천만 원을 요구합니다. 최근 월평균 매출은 2천8백만 원, 재료비 980만 원, 직원 인건비 650만 원, 월세 250만 원, 공과금·수수료 등 운영비 220만 원입니다. 장부상 남는 돈은 월 700만 원입니다.
여기서 흔히 놓치는 게 사장 본인의 노동입니다. 매일 매장에 서는 사장을 대신할 사람의 비용을 월 300만 원으로 잡으면 남는 돈은 400만 원입니다. 새 임대차계약에서 월세가 330만 원으로 오른다면 80만 원을 더 빼야 하니 월 320만 원이 됩니다. 매출은 그대로인데 수익이 절반 넘게 줄어든 셈입니다.
저라면 이 월 320만 원을 확인 없이 권리금으로 환산하지 않습니다. 먼저 카드매출과 현금영수증 자료, 부가가치세 신고 내용, 매입 내역을 대조합니다. 한 달만 유난히 잘된 가게인지 보려면 최소한 계절이 한 번 도는 기간의 자료가 필요합니다. 배달 매출이 크다면 광고비와 플랫폼 수수료도 실제 지출액으로 넣어야 하고요.
계산을 이어가기 위해 월 320만 원이 앞으로도 유지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영업 가치의 검토 기준을 임의로 12개월치인 3,840만 원에 둡니다. 여기에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의 현재 가치를 1,200만 원으로 평가하면 5,040만 원입니다. 12개월이라는 숫자는 법정 기준도, 모든 업종에 맞는 시세도 아닙니다. 매출이 흔들리거나 계약 조건이 불안하면 저는 이보다 짧게 잡습니다.
요구액 8천만 원과 제가 계산한 5,040만 원의 차이는 2,960만 원입니다. 이 간격을 좁히려면 장부로 확인되는 추가 수익이나 실제로 넘겨받을 자산이 있어야 합니다. 설명만으로 메우기에는 큰돈입니다.
시설값과 처음 들어갈 돈은 따로 적는다
시설은 설치 당시 견적서보다 현재 상태가 중요합니다. 5천만 원을 들여 꾸민 매장이라도 낡은 냉난방기와 철거해야 할 주방 동선까지 새것 값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저는 기기별 작동 상태를 보고, 같은 용도로 쓸 수 없는 시설은 가격에서 뺍니다. 수리비가 예상되면 그만큼 다시 차감합니다.
재고 400만 원을 인수한다면 품목과 수량을 확인한 뒤 별도 금액으로 적는 편이 명확합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재료를 정상 재고로 치면 인수 첫날부터 손실이 납니다. 위 사례의 시설 가치 1,200만 원에도 재고는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돈을 마련할 때는 권리금만 보면 안 됩니다. 가령 협의한 권리금이 5,040만 원이고, 보증금 3천만 원, 초기 수리비 700만 원, 재고 인수금 400만 원이라면 시작할 때 필요한 현금은 9,140만 원입니다. 보증금은 계약 종료 때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이지만, 당장 자금이 묶이는 건 똑같습니다. 영업이 자리 잡을 때까지 버틸 운영자금도 별도로 남겨둬야 합니다.
경매 물건에서 권리금 이야기가 나오면
경매 현장에서는 점유 중인 가게의 권리금 이야기가 입찰가와 뒤섞일 때가 있습니다. 저는 낙찰받을 상가의 가격과 임차인이 운영해 온 영업의 가치를 따로 봅니다. 낙찰자가 건물을 산다고 해서 기존 가게의 단골, 상호, 시설을 자동으로 넘겨받는 건 아닙니다. 반대로 임차인의 계약관계와 점유 상태를 확인하지 않고 ‘권리금은 내 일이 아니다’라고 단정해도 위험합니다.
입찰 전에는 임대차계약서, 현황조사서, 매각물건명세서를 서로 맞춰 보고 현장에서도 누가 어떤 영업을 하는지 확인합니다. 기존 임차인에게 보증금 반환이나 인도와 관련해 어떤 문제가 남는지에 따라 필요한 현금과 일정이 달라집니다. 권리금 회수 문제까지 거론된다면 당사자가 누구인지, 계약이 언제 끝나는지부터 분명히 해야 합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는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 기회를 보호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다만 그 규정이 권리금 전액을 누구에게나 보장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새 임차인을 주선하는 과정, 임대인의 거절 사유, 임대차 종료 시점처럼 따져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분쟁이 예상되는 물건이라면 입찰가를 쓰기 전에 계약 자료와 점유 관계를 전문가와 함께 확인하는 게 비용이 덜 듭니다.
권리금 계산에서 가장 아까운 실수는 숫자를 몰라서가 아니라, 상대가 말한 숫자를 내 숫자로 착각하는 겁니다. 저는 장부로 확인한 월수익, 실제 쓸 시설, 새 월세, 처음 필요한 현금을 각각 적어 놓습니다. 그렇게 쓰고도 가격이 맞으면 검토할 만합니다. 종이 위에서 이미 버거운 가게라면 현장에서 손님이 많아 보여도 저는 발길을 돌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