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권설정 한 줄을 놓쳤다가 입찰가를 다시 썼다

입찰장에 가기 전날, 등기사항증명서를 다시 펼쳤다가 전세권설정 한 줄 때문에 입찰가를 고친 적이 있다. 주변 시세보다 최저가가 낮아 처음엔 괜찮은 물건처럼 보였다. 그런데 전세권 등기일이 근저당권보다 빨랐다. 그 한 줄을 지나쳤다면 낙찰대금 외에 전세금 반환 부담까지 떠안을 수 있었다.
전세권은 흔히 말하는 전세계약과 이름이 비슷하지만, 경매에서는 따로 봐야 한다. 전세권설정등기가 있는 물건은 ‘세입자가 있으니 보증금만 확인하면 되겠지’ 하고 넘길 수 없다. 등기 순서와 배당요구 여부에 따라 낙찰자가 인수할 권리가 달라진다.
전세권설정은 계약서에 적는 것과 다르다
전세계약을 맺고 보증금을 지급했다고 해서 전세권이 자동으로 생기지는 않는다. 소유자와 전세권설정에 합의하고 등기까지 마쳐야 한다. 민법상 전세권자는 목적 부동산을 사용·수익하고, 후순위 권리자 등에 앞서 전세금을 변제받을 권리를 가진다. 소유자가 전세금 반환을 지체하면 전세권을 바탕으로 경매를 청구할 수도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임차인의 권리는 또 다른 줄에서 확인한다. 실제 인도와 주민등록으로 대항력을 갖췄는지, 확정일자를 받아 우선변제권 요건을 갖췄는지를 봐야 한다. 대법원 판례도 임차인으로서의 권리와 전세권자로서의 권리는 성립 요건이 다른 별개 권리라고 본다. 전세권 등기만 보고 임차인의 전입일을 짐작하거나, 전입 내역만 보고 전세권이 없다고 생각하면 위험하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전세권설정에 소유자의 협조와 등기 비용이 필요하다. 그리고 등기를 했다고 모든 위험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앞선 근저당권이 이미 크다면 전세권이 뒤에 설정됐다는 이유만으로 보증금 회수가 어려울 수 있다. 계약 전부터 등기사항증명서의 선순위 권리와 그 채권액을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등기 날짜만 보고 끝내면 틀린다
경매 물건에서 전세권을 보면 먼저 등기사항증명서의 설정일, 전세금, 목적 범위를 적는다. 그다음 근저당권·압류·가압류의 등기일과 비교한다. 민사집행법 제91조에 따르면 전세권이 이 권리들에 대항할 수 없으면 매각으로 소멸한다. 대항할 수 있는 전세권은 원칙적으로 매수인이 인수하지만, 전세권자가 적법하게 배당요구를 하면 매각으로 소멸한다.
그래서 선순위 전세권을 발견했을 때 필요한 질문은 두 개다. ‘먼저 설정됐나’와 ‘전세권자로서 배당요구를 했나’. 배당요구 종기를 지난 뒤 입찰한다면 사건기록에서 권리신고·배당요구 서류를 확인해야 한다. 신청인 이름만 볼 게 아니라 어떤 권리를 근거로 신청했는지도 봐야 한다. 임차인 자격으로 배당요구했다는 사실만으로 별개의 선순위 전세권까지 배당요구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
매각물건명세서도 반드시 읽는다. 인수되는 권리와 임차인 현황을 파악하는 출발점이다. 다만 서류의 한 칸을 최종 보증서처럼 믿지는 않는다. 실제 판례에는 선순위 전세권의 인수 사실이 명세서에 제대로 적히지 않아 낙찰자가 전세금 반환 부담을 떠안은 사례가 있다. 등기사항증명서, 매각물건명세서, 현황조사서, 배당요구 서류가 서로 맞는지 대조하는 편이 안전하다.
낙찰가 2억 2천만 원이 실제 매입비는 아니다
숫자로 놓고 보면 차이가 선명하다. 시세를 3억 6천만 원으로 조사한 주택에 선순위 전세권 1억 5천만 원이 있고, 전세권자가 배당요구를 하지 않아 낙찰자가 그 권리를 인수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낙찰가가 2억 2천만 원이라면 계산의 출발점은 2억 2천만 원이 아니라 3억 7천만 원이다. 취득세와 등기 비용, 수리비, 자금 조달 비용은 그 위에 더해진다. 겉으로는 시세보다 1억 4천만 원 싸 보여도 이미 계산이 뒤집힌다.
반대로 후순위 전세권이라고 해서 현장 확인을 건너뛸 수는 없다. 등기된 전세권이 매각으로 소멸하더라도 실제 점유자가 누구인지, 임차인으로서 별도 대항력을 주장할 여지는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보증금 반환 책임과 집을 넘겨받는 과정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입찰 전에 점유 관계를 확인해 두지 않으면 낙찰 뒤 명도 일정과 비용이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
제가 입찰가를 적을 때는 시세에서 원하는 수익만 빼지 않는다. 인수할 수 있는 전세금, 취득세, 수리비, 대출 이자, 보유 기간, 명도 비용을 먼저 놓고 거꾸로 계산한다. 시세도 한 건의 높은 호가가 아니라 같은 단지와 면적의 최근 거래, 현재 매물 상태를 함께 본다. 선순위 전세권의 배당요구 여부가 서류로 확인되지 않으면 그 불확실성까지 가격에 넣어야 한다.
입찰 전날 다시 확인하는 세 가지
- 등기사항증명서에서 전세권설정일·전세금·목적 범위와 근저당권·압류·가압류의 순서를 나란히 적는다.
- 매각물건명세서와 사건기록에서 전세권자의 배당요구 여부, 근거 권리, 배당요구 종기를 확인한다.
- 현황조사서와 현장을 통해 점유자를 확인하고, 임차인의 전입·확정일자 등 별도 권리도 검토한다.
공매 물건이라면 경매에서 쓰던 ‘배당요구하면 소멸한다’는 판단을 그대로 옮겨 적지 않는다. 적용 절차와 매각 조건이 다를 수 있어 해당 공매의 공고와 권리 관계를 따로 검토해야 한다. 제가 전세권설정 등기를 보면 입찰가보다 먼저 서류를 다시 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줄을 읽는 데 드는 시간은 짧지만, 잘못 읽은 전세금을 돌려받는 일은 길고 비싸다.
